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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4 00:00


구례 한옥체험마을, '행복마을' 상사마을 vs 오미마을 어디를 갈까?

구례의 오미마을

구례에서 가장 알아주는 명당자리에 위치한 오미마을. 지리산 노고단 형제봉이 줄기를 뻗어 나와 섬진강에 이르며 만든 너른 옥토에 자리한 곳이다.

풍수가들이 꼽는 명당은 세 군데인데,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락지, 금거북이가 진흙 속에 묻혀있다는 금귀몰니, 금, 은, 진주, 산호, 호박, 귀한 보물 다섯 가지나 쌓여 있다는 오보교취가 그곳이다. 이 땅을 찾아 집을 지으면 천운을 받아 힘 안들이고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하여, 조선시대 때부터 전국 각지의 지체 높은 양반들이 앞 다투어 몰려들었던 탓에 한 때 오미마을은 백 호가 넘는 집들로 북적였다.


특히, 이 금환락지의 핵심에는 아흔아홉 칸짜리 집, 운조루가 있고, 운조루와 머지않은 곳에 곡전재가 있다. 오늘 방문할 곳은 운조루다.



남한길지에 위치한 운조루
오미마을 금환락지의 명당 한가운데 운조루가 들어서 있다.
운조루는 낙안현감을 지낸 유이주가 무려 7년 동안의 대공사를 거쳐 1776년에 완성한 집으로, 유이주는 운조루 터를 닦으면서 “하늘이 이 땅을 아껴 두었다가 비밀스럽게 나를 기다린 것”이라고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운조루 대문 앞 연못.  네모난 연못가운데에 둥근 섬은, 삼신산을 뜻한다. 삼신산과 연못 바깥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드나들 수도 있게 해놓았는데,이 연못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맞은편에 있는 계족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라고.

삼신산이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뜻한다.


원래 이 연못은 규모가 아주 컸지만, 현재는 일부만 남겨져 있다.
연꽃이 피고, 나무에 꽃이 필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이 연못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역할을 담당한다.



집의 이름인 ‘운조루’는 본래 큰 사랑채를 가리키는 말.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 중에서 착안해 집의 이름, 즉 택호를 지었다.

“지팡이 짚고 다니다 아무데서나 쉬면서 때때로 고개 들어 먼 곳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


여기에 나오는 구름과 새를 따다가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의 운조루를 선택한 것.  

 


운조루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명당자리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있지만, 이 건물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른 역사적인 유물로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운조루는 조선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윤이주가 세운것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구조의 집이다.

 ㅡ자형 하인들의 방 행랑채와 T자형 사랑채, ㄷ자형의 안채가 있고, 대문 안 행랑채가 서로 연이어져 있고, 안채의 뒷편에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구조 양식은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은 나무인 '도리'와 그 도리를 받치고 있는 모진 나무인 '장여'로만 된 구조인 민도리집으로서, 지붕은 사랑채, 안채가 연이어져 있으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완공 당시 아흔아홉 칸이었던 운조루는 250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는 쓰러지고 일부는 낡아 오늘날에는 60여 칸만이 남아 있다.

 

 

▲ 운조루 삶의 흔적들

 
양반들의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 행랑채의 대문보다 높게 지은 대문인 솟을 대문에는 호랑이 뼈가 달려 있는데, 그 의미는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에 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기도 하지만, 저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운조루를 지은 유의주가 무관으로서 용맹스럽게 호랑이를 때려 잡고, 그 가죽을 벗겨 영조임금에게 바친 가문의 영광스러움을 자꾸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호랑이 뼈가 사라져서 대신에 말뼈를 걸어 두게 되었다고.

 


문의 규모나 생김새는 신분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민가의 대문 중에서 가장 격식을 갖춘 것이 『솟을대문』이다. 길게 이어진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은 지붕을 이고 있는 대문라고 보면 되는데, 지붕이 높이 솟았다 해서 솟을대문이라고 부린다. 

벼슬을 하는 양반이 초헌을 타고 문을 출입할 때 머리가 닿지 않도록 높여 놓은 것에서 생겨난 구조인데, 후에는 양반가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 운조루 부엌

 

 

 타인능해, 운조루 부엌안에는 타인능해라고 적힌 목독이 있다. "타인도 열게 하여 주위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하라"는 뜻으로 권위만 있는 양반이 아닌 서민들까지 생각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다.

 

 

▲ 운조루 부엌 | 거무스름하게 옛 삶을 보여주는 그으름이 가득하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사랑채가 보이고 양 옆으로 행랑채를 지나게 된다. 행랑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동행랑과 서행랑으로 나뉘는데, 이곳에는 주로 운조루의 노복들이 살았다고 한다.

  


차분한 분위기의 사랑채는 큰 사랑채와 중간 사랑채로 나뉘는데, 왼쪽에 보이는 좀 더 높은 기단에 자리한 건물이 큰 사랑채이고, 오른쪽의 약간 낮은 건물이 ‘중간 사랑채'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원래 큰 사랑채에서도 두 칸의 누마루를 가리킨다.
진짜 운조루라고 할 수 있는 대청에서 누마루까지 이어진 마루 공간. 손때 묻은 우물마루와 자연을 닮은 기둥의 옛 빛깔, 그리고 장식 없는 창호문의 어울림까지 선조들의 지혜와 미적 감각이 빚어낸 최고의 고택 중 하나라고 손꼽힌다.
 

 

▲ 운조루 | 우측으로 가면 닭장이 보인다.


 

▲ 운조루 | 손잡이도 옛 방식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운조루 |사당

사당은 초창 때의 모습은 정면이 분명하게 2칸으로 표현되어 있다. 지금 현재는 정면은 1칸이고 측면은 툇마루가 있어서 2칸인 격으로 이해하고 있다. 안채 동측채의 부엌을 지나 들어서면 안채와 사당을 구분하는 담이 나오고 담 뒤로 사당과 협문이 위치하고 있다 남쪽의 협문을 지나 사당으로 출입하게 된다. 원래는 사당 앞으로 신문이 있었는데 기록에 따르자면 1869년 노후하여 스스로 넘어졌다고 한다. 현재, 여전히 신주를 모시고 기제사와 명절 차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 운조루 |행랑채


'전라구례오미동가도'에서 보면 양쪽 행랑에서 북쪽으로 솟아 올라간 익랑은 각각 동족침사와 서협랑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없다. 행낭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남쪽 담장 대신 18칸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등으로 쓰이고 있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던 곳이다. 솟을 대문 동쪽으로 작은문이 있어 안주인이 출입했다고. 건축 당시 이 행낭은 대문을 중심으로 각각 12칸이었으나 지금은 동쪽이 11칸, 서쪽이 7칸만 남아있다.



▲ 운조루 |담장 사이에 낀 이끼들이 운조루와 잘 어우려진다.


▲ 운조루 |안채



안채는 큰사랑채와 중간사랑채 사이에 있는 중문간을 통하여 진입할 수 있다. 여성들과 아이들이 기거했던 공간으로 지금도 살림채로 사용중이다. 안마당보다 높게 기단을 쌓은 'ㄷ'자형 평면이 안채의 기본형이나 형태상 귀래정의 오른쪽으로 붙은 남행랑이 안채 전면에 있어 '튼ㅁ'자형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다.


서측채에 있는 부엌에 들어서면 남측으로 큰사랑뒷마당을 통하여 큰사랑에 계신 손님의 수발을 들고 음식을 나를 수 있는 문이 있으며, 북측에는 큰사랑뒷마당 담장 뒤로 부엌일을 할 수 있도록 우물이 있는 부엌마당을 두었다. 안채 뒤로는 단을 높여 안채 뒷마당이 있는데 지금은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이한 구성은 다락 구조인데, 안방 위에는 골방이 있고 그 위로는 다락을 두었다. 좌측채와 우측채 모두 상부에 다락이 있다.
이렇게 다락을 두어 층을 구성하는 수법은 경북의 예천권씨 종가나 의성김씨 종가에서처럼 주로 경상북도 가옥에서 볼 수 있는 가옥구조로 서측채 다락은 사랑 뒷마당으로 오를 수 있는데 남단 벽에는 원래 가로로 누워진 띠살 들창문이 달려 있어 옛 시절에 남성들에 의해 통제된 젊은 여성들이 사랑마당을 오가는 남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고한다.



안채는 방향으로 보자면 북측채에 해당한다. 좌우측에 안마당과 같은 높이로 방과 부엌, 광이 있는 서측채와 동측채를 두었다.남측으로 단을 두고 높이를 낮추어 곡간채(남측채)가 자리하고 있다.

 

 

▲ 운조루 |곡간채 

 

 

▲ 운조루 |여전히 운조루는 -ing

 

▲ 운조루 |장독대 

 

 

많은 장독대와 고목, 그리고 고목 사이에 핀 버섯...운조루는 현재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며, 우리의 역사 속에 ing중이다. 


쌍산재와 운조루, 상사마을과 오미마을의 한옥을 모두 둘러보니, 비슷한듯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쌍산재는 자연속 동화이고, 운조루는 삶의 터전이다. 경관은 쌍산재가 더 아름답고, 운조루는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전통 한옥 양식을 보여준다. 구례 한옥체험마을, 두 군데 다 머물러봐야 남도 한옥의 진짜 내면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고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 구례 운조루 위치


구례 운조루


Address
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Tel 061-781-2644
Admission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1968.11.25 지정). 입장료 성인 1,000원, 학생 700원, 군경 500원 어린이 무료.
Homepage
http://www.unjoru.net/





 


 

Posted by 권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