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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4 23:40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이름지어졌다.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을 비롯한
국보와 보물, 천연기념물이 가득한 화엄사, 그 신비한 절로 들어가보자.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인도에서 온 연기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와 도선국사에 의한 중건 과정을 거치며 번성하다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인조 14년(1636년)에 중건되었다.


가람 배치가 영주의 부석사 만큼이나 독특하다. 일주문을 지나 약 30° 꺾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배치한 것이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고, 보제루는 다른 절에서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는 구조다.


지리산 화엄사 천왕문에 있는 사천왕상은 흙으로 만든 소조불로 높이는 378㎝다. 1630년에서 1636년 사이에 벽암선사가 화엄사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금강문·보제루·천왕문·적묵당·일주문 등의 건물을 중건하였을 때 사천왕상도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천왕문 내부 왼쪽으로는 비파를 든 동방 지국천왕과 칼을 쥔 남방 중장천왕이, 오른쪽으로는 용과 여의주를 든 서방 광목천왕 그리고 깃발 달린 창과 사자를 쥔 북방 다문천왕이 있다. 북방다문천왕은 수미산의 북방을 수호하고 재복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 동방지국천왕은  수미산의 동방을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이다. 네 구의 사천왕상은 공통으로 화염 무늬가 새겨진 화관을 쓰고 갑옷을 입고 있으며,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보로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화엄사 영산회괘불탱(국보 301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35호),화엄사 각황전(국보 67호)이 있고, 보물로는 대웅전삼신불탱(보물 1363호), 서오층석탑사리장엄구(보물 1348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132호),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 300호),화엄사 대웅전(보물 299호), 화엄사 서오층 석탑(보물133호)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화엄사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성보유물로는 화엄사 금강문, 화엄사 나한전, 화엄사 불이문, 화엄사 원통전, 화엄사 구층암, 화엄사 구층암석등(전남유형문화제 제132호), 화엄사 보제루(시도유형문화제 49호)가 있다.


 

 

화엄사를 볼 때는 몰랐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건물, 탑이 대부분 국보,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한국사 책에서 보던 통일신라시대 탑을 실제로 보다니!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공양한다.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화엄사를 오르는 길은 힘들지 않다.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꽤 많은 듯하다. 

 

 

▲ 화엄사 보제루|시도유형문화제 49호


보제루란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만세루, 구광루라고도 부른다. 이 건물은 법회 때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 강당으로 지어진 2층의 누각 건물로 대웅전 앞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인조 때 벽암대사 각성이 창건하고 약 200년 후인 1827년(순조 27)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1층은 2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초기 가람 형태에서 보제루는 금당의 뒤쪽에 있었던 강당의 기능을 금당 앞쪽에서 대신하여 대체로 모든 법요식을 행하던 건물이다. 그러나 금당 또는 대웅전의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현재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보제루에서 법요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 


나무 본연의 색감을 살린 보제루와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옆 건물과의 대비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 대웅전으로 가는 길


▲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 133호|
통일신라시대


▲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132호| 통일신라시대

화엄사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이 서 있는 대웅전 앞이다. 이 두 탑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 졌다.


▲  화엄사 | 지리산천연암반수

 

지리산천연암반수를 CF에서 본 적 있지만, 이렇게 실제로 뿌연 물일지는 몰랐다. 잠시 뒤에 투명한 색으로 바뀌는데, 톡~쏘는 탄산이 가득한 물맛이였다. 화엄사에 방문한다면, 이 물 꼭~마셔보자~! 탄산이 톡~톡~톡~! 

 

 

▲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 300호|통일신라시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 통일신라시대


대웅전 좌측에는 우리나라 대표 보물인 국보 화엄사 원전전사자탑과 화엄사각황전 앞 석등이 있다. 원전전사자탑은 하단에 사자모양이 있어 특이한 형태라 기억이 쏙~쏙~ 된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종이 보인다. 종보러 다시 저쪽으로 이동~ 샤샤샥~ 
 


화엄사는 일출과 일몰 전, 지리산 자락을 울리는 타종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종이 바로 그 소리의 주인공이다.

 

 
하동에서 화엄사에 이르는 길은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더불어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어 해마다 4월 중순이 절정이라고 한다. 그러니, 구례 방문 최적기는 4월. 봄여행의 진수를 보여준다.

 


▲ 화엄사 |대웅전 보물 299호, 조선시대

대웅전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는 놓칠 건물이 하나도 없는 듯, 하나 하나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구층암을 가려면, 대나무 숲을 지나야 한다. 많이 걷는 코스가 아니니까, 부담없이 구층암까지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구층암은 화엄사의 산내 암자로서,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구층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엄사 주변에는 80여개의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보존되어 있는  수는 얼마없다. 지리산 화엄사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산내암자인 구층암 천불보전에는 작은 목조 불상이 있다. 정유재란 때 화엄사의 또 다른 산내암자인 용문암에서 옮겨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엄사는 4대 명품 녹차 산지중의 한곳으로 유명하다. 작설차는 사천 보명산 다솔사, 옥로는 지리산 화엄사, 반야는 지리산 쌍계사, 춘설은 무등산 녹차로 옛부터 4대 명품 녹차로 알려져 있다.
 

 

▲ 구층암에서 스님이 주시는 차 한잔을~!

 


한국사람이 가득한 구층암에 이색 방문객이 눈에 띈다. 영국에서 온 Simon Bond씨.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한국 불교 차 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 해 보인다. 흥쾌히 사진 촬영에 응해주신 Simon Bond씨께 감사인사를 전한다. 
 


화엄사를 끝으로 1박 2일의 구례여행이 끝났다. 2014년 남도해양관광열차인 S트레인을 타고 맞이한 봄여행, 여행은 여름이 최고라 생각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였다. 살랑~살랑~봄바람과 함께 구례의 아름다운 명소들을 방문해보니, 우리나라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랬던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명소를 즐기려면, 사계절 달라진 모습을 다  봐야 한다고... 그 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봄 챕터 한 장을 넘기며...




▲ 화엄사 위치

지리산 화엄사

Address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지리산화엄사
Tel 061-782-7600
Access
· 시외버스 : 남부터미널→구례행 첫차 06:40 막차 22:00 (배차시간 2시간, 소요시간3:10)

· 시내버스 : 구례→화엄사 첫차 06:40 막차 20:00 (배차시간 1시간, 소요시간 15분)
· 철도 :
용산역→ 구례구역 : 22:50 → 04:06 (무)23:50 → 05:02 (무)06:35 → 11:05 (새)07:50 → 12:53 (무)08:50 → 13:52 (무)09:50 → 14:17 (새)10:50 → 15:54 (무)11:50 → 16:53 (무)12:50 → 17:50 (무)13:50 → 18:51 (무)14:50 → 19:55 (무)15:50 → 20:45 (무)16:50 → 21:47 (무)17:50 → 22:21 (새)18:50 → 23:44 (무)23:20 → 04:39 (무)(토,일)15:35 → 20:09 (새)(토,일)

구례구역 → 용산역 : 06:23 → 11:24 (무)07:34 → 12:39 (무)08:47 → 13:48 (무)10:08 → 15:16 (무)11:20 → 15:51 (새)12:37 → 17:47 (무)13:37 → 18:46 (무)14:33 → 19:40 (무)15:10 → 19:37 (새)16:18 → 21:30 (무)17:20 → 22:20 (무)18:22 → 23:03 (무)19:22 → 00:19 (무)23:10 → 04:29 (무)00:10 → 05:34 (무)16:54 → 21:42 (새)(토,일)01:15 → 06:44 (무)(토,일)

· 택시 : 구례 - 화엄사 (10분소요)구례 택시 안내 전화 061)783-5000

Homepage www.hwaeomsa.org
Time 오전 7시 - 오후 7시 30분 (주차 무료)
Admission 성인 3,500  청소년 1,800  어린이 1,300
Information
문화해설 : 평일|주말 오전 10시 - 오후4시, 10인이상 가능, 해설비 무료

                 ※ 구례관광안내소 연락처 : 061-780-2450






 

Posted by 권현아
2014.04.24 00:00


구례 한옥체험마을, '행복마을' 상사마을 vs 오미마을 어디를 갈까?

구례의 오미마을

구례에서 가장 알아주는 명당자리에 위치한 오미마을. 지리산 노고단 형제봉이 줄기를 뻗어 나와 섬진강에 이르며 만든 너른 옥토에 자리한 곳이다.

풍수가들이 꼽는 명당은 세 군데인데,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락지, 금거북이가 진흙 속에 묻혀있다는 금귀몰니, 금, 은, 진주, 산호, 호박, 귀한 보물 다섯 가지나 쌓여 있다는 오보교취가 그곳이다. 이 땅을 찾아 집을 지으면 천운을 받아 힘 안들이고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하여, 조선시대 때부터 전국 각지의 지체 높은 양반들이 앞 다투어 몰려들었던 탓에 한 때 오미마을은 백 호가 넘는 집들로 북적였다.


특히, 이 금환락지의 핵심에는 아흔아홉 칸짜리 집, 운조루가 있고, 운조루와 머지않은 곳에 곡전재가 있다. 오늘 방문할 곳은 운조루다.



남한길지에 위치한 운조루
오미마을 금환락지의 명당 한가운데 운조루가 들어서 있다.
운조루는 낙안현감을 지낸 유이주가 무려 7년 동안의 대공사를 거쳐 1776년에 완성한 집으로, 유이주는 운조루 터를 닦으면서 “하늘이 이 땅을 아껴 두었다가 비밀스럽게 나를 기다린 것”이라고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운조루 대문 앞 연못.  네모난 연못가운데에 둥근 섬은, 삼신산을 뜻한다. 삼신산과 연못 바깥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드나들 수도 있게 해놓았는데,이 연못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맞은편에 있는 계족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라고.

삼신산이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뜻한다.


원래 이 연못은 규모가 아주 컸지만, 현재는 일부만 남겨져 있다.
연꽃이 피고, 나무에 꽃이 필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이 연못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역할을 담당한다.



집의 이름인 ‘운조루’는 본래 큰 사랑채를 가리키는 말.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 중에서 착안해 집의 이름, 즉 택호를 지었다.

“지팡이 짚고 다니다 아무데서나 쉬면서 때때로 고개 들어 먼 곳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


여기에 나오는 구름과 새를 따다가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의 운조루를 선택한 것.  

 


운조루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명당자리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있지만, 이 건물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른 역사적인 유물로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운조루는 조선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윤이주가 세운것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구조의 집이다.

 ㅡ자형 하인들의 방 행랑채와 T자형 사랑채, ㄷ자형의 안채가 있고, 대문 안 행랑채가 서로 연이어져 있고, 안채의 뒷편에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구조 양식은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은 나무인 '도리'와 그 도리를 받치고 있는 모진 나무인 '장여'로만 된 구조인 민도리집으로서, 지붕은 사랑채, 안채가 연이어져 있으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완공 당시 아흔아홉 칸이었던 운조루는 250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는 쓰러지고 일부는 낡아 오늘날에는 60여 칸만이 남아 있다.

 

 

▲ 운조루 삶의 흔적들

 
양반들의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 행랑채의 대문보다 높게 지은 대문인 솟을 대문에는 호랑이 뼈가 달려 있는데, 그 의미는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에 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기도 하지만, 저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운조루를 지은 유의주가 무관으로서 용맹스럽게 호랑이를 때려 잡고, 그 가죽을 벗겨 영조임금에게 바친 가문의 영광스러움을 자꾸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호랑이 뼈가 사라져서 대신에 말뼈를 걸어 두게 되었다고.

 


문의 규모나 생김새는 신분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민가의 대문 중에서 가장 격식을 갖춘 것이 『솟을대문』이다. 길게 이어진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은 지붕을 이고 있는 대문라고 보면 되는데, 지붕이 높이 솟았다 해서 솟을대문이라고 부린다. 

벼슬을 하는 양반이 초헌을 타고 문을 출입할 때 머리가 닿지 않도록 높여 놓은 것에서 생겨난 구조인데, 후에는 양반가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 운조루 부엌

 

 

 타인능해, 운조루 부엌안에는 타인능해라고 적힌 목독이 있다. "타인도 열게 하여 주위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하라"는 뜻으로 권위만 있는 양반이 아닌 서민들까지 생각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다.

 

 

▲ 운조루 부엌 | 거무스름하게 옛 삶을 보여주는 그으름이 가득하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사랑채가 보이고 양 옆으로 행랑채를 지나게 된다. 행랑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동행랑과 서행랑으로 나뉘는데, 이곳에는 주로 운조루의 노복들이 살았다고 한다.

  


차분한 분위기의 사랑채는 큰 사랑채와 중간 사랑채로 나뉘는데, 왼쪽에 보이는 좀 더 높은 기단에 자리한 건물이 큰 사랑채이고, 오른쪽의 약간 낮은 건물이 ‘중간 사랑채'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원래 큰 사랑채에서도 두 칸의 누마루를 가리킨다.
진짜 운조루라고 할 수 있는 대청에서 누마루까지 이어진 마루 공간. 손때 묻은 우물마루와 자연을 닮은 기둥의 옛 빛깔, 그리고 장식 없는 창호문의 어울림까지 선조들의 지혜와 미적 감각이 빚어낸 최고의 고택 중 하나라고 손꼽힌다.
 

 

▲ 운조루 | 우측으로 가면 닭장이 보인다.


 

▲ 운조루 | 손잡이도 옛 방식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운조루 |사당

사당은 초창 때의 모습은 정면이 분명하게 2칸으로 표현되어 있다. 지금 현재는 정면은 1칸이고 측면은 툇마루가 있어서 2칸인 격으로 이해하고 있다. 안채 동측채의 부엌을 지나 들어서면 안채와 사당을 구분하는 담이 나오고 담 뒤로 사당과 협문이 위치하고 있다 남쪽의 협문을 지나 사당으로 출입하게 된다. 원래는 사당 앞으로 신문이 있었는데 기록에 따르자면 1869년 노후하여 스스로 넘어졌다고 한다. 현재, 여전히 신주를 모시고 기제사와 명절 차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 운조루 |행랑채


'전라구례오미동가도'에서 보면 양쪽 행랑에서 북쪽으로 솟아 올라간 익랑은 각각 동족침사와 서협랑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없다. 행낭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남쪽 담장 대신 18칸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헛간과 창고 등으로 쓰이고 있지만 옛날에는 노복들이 살았던 곳이다. 솟을 대문 동쪽으로 작은문이 있어 안주인이 출입했다고. 건축 당시 이 행낭은 대문을 중심으로 각각 12칸이었으나 지금은 동쪽이 11칸, 서쪽이 7칸만 남아있다.



▲ 운조루 |담장 사이에 낀 이끼들이 운조루와 잘 어우려진다.


▲ 운조루 |안채



안채는 큰사랑채와 중간사랑채 사이에 있는 중문간을 통하여 진입할 수 있다. 여성들과 아이들이 기거했던 공간으로 지금도 살림채로 사용중이다. 안마당보다 높게 기단을 쌓은 'ㄷ'자형 평면이 안채의 기본형이나 형태상 귀래정의 오른쪽으로 붙은 남행랑이 안채 전면에 있어 '튼ㅁ'자형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다.


서측채에 있는 부엌에 들어서면 남측으로 큰사랑뒷마당을 통하여 큰사랑에 계신 손님의 수발을 들고 음식을 나를 수 있는 문이 있으며, 북측에는 큰사랑뒷마당 담장 뒤로 부엌일을 할 수 있도록 우물이 있는 부엌마당을 두었다. 안채 뒤로는 단을 높여 안채 뒷마당이 있는데 지금은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이한 구성은 다락 구조인데, 안방 위에는 골방이 있고 그 위로는 다락을 두었다. 좌측채와 우측채 모두 상부에 다락이 있다.
이렇게 다락을 두어 층을 구성하는 수법은 경북의 예천권씨 종가나 의성김씨 종가에서처럼 주로 경상북도 가옥에서 볼 수 있는 가옥구조로 서측채 다락은 사랑 뒷마당으로 오를 수 있는데 남단 벽에는 원래 가로로 누워진 띠살 들창문이 달려 있어 옛 시절에 남성들에 의해 통제된 젊은 여성들이 사랑마당을 오가는 남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고한다.



안채는 방향으로 보자면 북측채에 해당한다. 좌우측에 안마당과 같은 높이로 방과 부엌, 광이 있는 서측채와 동측채를 두었다.남측으로 단을 두고 높이를 낮추어 곡간채(남측채)가 자리하고 있다.

 

 

▲ 운조루 |곡간채 

 

 

▲ 운조루 |여전히 운조루는 -ing

 

▲ 운조루 |장독대 

 

 

많은 장독대와 고목, 그리고 고목 사이에 핀 버섯...운조루는 현재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며, 우리의 역사 속에 ing중이다. 


쌍산재와 운조루, 상사마을과 오미마을의 한옥을 모두 둘러보니, 비슷한듯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쌍산재는 자연속 동화이고, 운조루는 삶의 터전이다. 경관은 쌍산재가 더 아름답고, 운조루는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전통 한옥 양식을 보여준다. 구례 한옥체험마을, 두 군데 다 머물러봐야 남도 한옥의 진짜 내면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고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 구례 운조루 위치


구례 운조루


Address
전남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Tel 061-781-2644
Admission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1968.11.25 지정). 입장료 성인 1,000원, 학생 700원, 군경 500원 어린이 무료.
Homepage
http://www.unjoru.net/





 


 

Posted by 권현아
2014.04.23 23:59



한옥은 지역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다.
전라남도 한옥의 특징은?

경상남도,경상북도와 전라 남도, 전라북도에 분포된 한옥집은 유사한 형태를 띄는데,

부엌, 방, 대청마루, 방이 일렬로 구성되기 때문에 '一자형'으로,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마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북부지방 한옥은, 부엌과 정주간 사이에 벽체가 없이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형성하고 그 옆으로 방들이 '口자형'을 이루면서 서로 붙어 있다. 정주간은 부뚜막과 방바닥이 한 평면으로 된 큰방으로, 이 곳에서 손님을 맞고 온 가족이 식사를 하기도 했던 곳이다. 부엌 한쪽에 외양간과 디딜 방앗간 등이 있고, 방들이 서로 벽을 공유하면서 서로 맞붙어 있는 것은 북부 지방의 추위를 막기 위한 구조다.

황해도 남부와 경기도, 충청도 일대의 중부 지방 한옥은 'ᄀ자형'이다. 북부와 남부의 절충, 혼합된 형태라 'ᄆ자형' 도 보인다.  자세히 내면을 들여다 보면, '서울지방형'과 같은 "ᄀ자형"이나 부엌과 안방의 방향이 중부형에서는 남향이고, 서울지방형에서는 동,서향이 되는 것이 다르다.



상사마을 장수의 비결, 당몰샘
구례군 간전면 양천 마을과 함께 전국 최장수 마을로 손꼽히는 상사마을은 장수의 비결로 심산유곡의 깨끗한 환경과 "당몰샘"을 꼽는다. 당몰샘은 "지리산 약초 뿌리 녹는 물이 다 흘러든다"는 말을 할 정도로 효능이 뛰어난데, 1986년 고려대 예방 의학팀의 수질검사 결과 대장균이 한마리도 없는 전국 최상의 물로 판명되었다. 쌍산재 바로 앞에 위치한 당몰샘은 마을 주민 뿐만 아니라, 방문객에게도 개방되어있다. 신기하게도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일정 높이를 유지한다고 한다. 맑은 당몰샘 물 한잔을 마시니 왠지 건강해 지는 느낌이다.


쌍산재가 위치한 상사마을은 한옥 체험마을과 농촌 체험 교육장이 운영되고 있다. 구례 한옥체험마을은 행복마을은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과,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남부 한옥의 특징을 보여주는 귀중한 체험 공간이다.


▲ 쌍산재 관리동|안채

옛집의 정취를 자연 그대로 들려주는 '쌍산재'
안채, 건너채, 사랑채, 별채, 서당채, 경암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쌍산재 안채는 남부의 전형적인 한옥구조로 정남향 4칸 접집으로 안살림 공간이였던 건물이다. 왼쪽에 아궁이, 큰방 2개와 대청마루 작은방, 뒤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앞을 마루가 기다랗게 놓여져 있다. 

 
북부한옥, 중부한옥, 남부 한옥을 모두 가 봤지만, 이렇게  자연속에 있는 웅장한 한옥은 처음 본 것 같다. 쌍산재 입구에서 들어오고도 대나무 숲도 지나가야 할 정도로 큰 면적을 자랑한다. 

 


▲ 죽노차밭길

정오의 강한 햇살속에서도 이곳에 들어오면, 시원하다. 왠지 요정이 나올 것만 같은 죽노차밭길 다음에 펼쳐진 한옥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 UP~UP~ 

 

▲ 쌍산재|별채


죽노차밭길에 위치한 별채는 단체로 온 사람들이 머물수 있는 객실로 2개의 방이 있으며 비수기 20만원, 성수기 30만원이다. 수용인원은 7-8명정도.


 

▲ 쌍산재 서당채 앞 정원


한옥에서 바라보는 정원이 아무리 아름답다해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치 궁의 뜰처럼 크고, 화려하다.

 


▲ 쌍산재 | 서당채
 


모래 위에 그린 그림...사도리 상사마을

신라말기 승 동선이 마을앞 강변에서 우연히 이인을 만나 세사를 물어보았던 바, 이인은 말을 하지 않고 모래 위에 산국도를 그려 삼국통일의 징조를 암시해 주어 도선이 이를 크게 깨닫고, 고려 태조왕건을 도와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웠다. 후인이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 하여 사도리라 칭하였으며 일제때 윗마을 과 아랫마을을 각각 상사리, 하사리로 분동하였다. 마을 형성연대는 산라 흥덕왕시대부터 설촌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해주오씨와 녕천이씨가 대종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1986년 인구통계조사결과 전국 제1의 장수마을 이였고, 지금도 장수촌으로 알려져 있다.


 


 ▲ 쌍산재 | 서당채

서당채는 사설 교육기관이였던 서당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쌍산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과 전통한옥의 운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서당채의 이 곳은 화장실과 조리실이 있는 곳으로 아래에는 재래식 아궁이가 있다.


큰방 적정 인원은 4명, 비수기 12만원 성수기 15만원이며 작은방 적정인원은 2명 비수기 10만원 성수기 12만원으로 비싸지 않게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 쌍산재|경암당


쌍산재의 가장 윗쪽에 위치한 경암당은 서당을 운영하셨던 선조를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방 적정인원은 4명, 비수기 15만원 성수기 20만원이다.

 

▲ 쌍산재|경암당

경암당 건물은 신축된 건물로 대청마루에는 2층 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한옥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깨끗한 새 건물이라 신선한 구조가 눈에 띈다. 

 


▲ 영벽문을 지나 만날 수 있는 낚시터


 

 

▲ 1박 2일 이승기씨가 달렸던 낚시터길

이 길을 유심히 봐야 한다. 1박 2일 승기군이 달렸던 길. TV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TV속 그곳이라니, 눈도장 한번 찍어 주시고~!! 꽝~! 꽝~~ 꽝~!

 

▲ 경암당 앞에는 봄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 똑~똑~똑~ 봄을 노크하는 아름다운 꽃의 향연


▲ 빨강, 노랑, 분홍 꽃들과 함께 있으니, 봄이 온 것이 실감난다.


▲ 이제 죽노차밭길을 지나 쌍산재 밖으로 나가야 할 시간


옛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쌍산재는 남부한옥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개인, 가족, 단체 단위의 방들이 준비되어 있어, 한옥의 전통을 체험하기에 좋다.


쌍산재 뿐만 아니라, 상사마을에는 17채의 한옥민박 및 체험이 준비되어 있으니, 한옥체험을 원하는 사람은 상사마을을 방문해 보자.

 


한옥은 대부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약간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였다. 쌍산재 문을 나서자, 논이 끝없이 펼쳐진다.  쌍산재는 남도 한옥의 웅장한 규모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과 가장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였다.
 
 

지리산 상사마을 쌍산재

Address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632
Tel 010-3635-7115
Homepage
www.ssangsanje.com
                 ※ 쌍산재 외 상사마을 한옥 17채. 구례 한옥마을 조성되어 있음.

※ 구례여행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 : http://tour.gurye.go.kr/jcms/guryetours/





Posted by 권현아